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 15년 만에 이름을 얻은 배우, 연극 「서울의 별」 전호준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 15년 만에 이름을 얻은 배우, 연극 「서울의 별」 전호준

그는 지금 대학로 스타릿홀에서 박문호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 작품에는 열세 명의 배우가 네 배역을 나눠 맡는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배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배우도 있다.
이음미디어가 그중 한 사람을 따라가 보기로 한 이유는, 그가 오래 이름 없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빛나는 별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면, 무대 위에서 가장 오래 이름 없이 서 있던 사람의 이야기부터 들어보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했다.

앙상블 배우에게는 이름이 없다. 무대 위에 분명히 서 있는데 프로그램북에는 배역명 대신 '앙상블'이라고만 적힌다. 대사는 적거나 없다. 노래와 춤, 그리고 몸으로 존재한다.
전호준은 그 자리에서 15년을 보냈다. 「위키드」와 「캣츠」, 「시카고」, 「맘마미아」, 「남한산성」의 무대에 그가 있었다. 「킹키부츠」의 엔젤 역으로 이름이 조금 알려졌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이름 없는 자리였다.
지금 그는 대학로 스타릿홀에서 박문호라는 이름으로 조명을 받고 있다.
■ 옥탑방에 모인 세 사람

연극 「서울의 별」은 서울 꼭대기의 낡은 집을 배경으로 한다.
작품은 세 사람을 이렇게 소개한다. 늙은 열쇠장이 김만수는 세월에 지쳤지만 여전히 삶의 기술을 간직하고 있다. 젊은 도박꾼 박문호는 매번 한탕을 꿈꾸지만 늘 무너진다. 밤무대 가수 조미령은 과거의 상처를 안고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처음에는 서로를 밀어내던 이들이 마침내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며 진짜 이웃, 진짜 가족, 진짜 사람이 되어간다.
7월 31일 막을 올린 이 작품은 관객들의 재공연 요청으로 앙코르가 결정돼 10월 18일까지 이어진다. 제작진은 "유쾌한 희극 속에 담긴 인생의 씁쓸한 진실,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따뜻한 연대를 그리는 휴먼 드라마"라고 소개했다.
■ "난 기술자예요! 테크니션!"

박문호는 자기를 이렇게 소개한다.
"난 기술자예요! 테크니션!" — 극중 박문호
그가 말하는 기술은 화투 기술이다.
그런데 같은 옥탑방에 진짜 기술자가 산다. 작품은 김만수를 "세월에 지쳤지만 여전히 삶의 기술을 간직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잠긴 것을 여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다.
한 사람은 기술자라고 외치고, 한 사람은 말없이 기술을 지녔다. 같은 단어를 두 사람이 전혀 다른 뜻으로 쓴다. 이 극이 흘러가는 방향은 그 거리가 좁혀지는 쪽이다.
■ "그게 다가 아니었던 녀석"
박문호를 소개하는 문구는 짧다.
"한방인생을 노리는 철없는 놈…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던 녀석"
그가 무대에서 하는 말 가운데 이런 대사가 있다.
"내가 아저씨 코 묻은 돈 따먹어서 부자 될 생각 하겠수?" — 극중 박문호
한탕을 노린다면서도 늙은 이웃의 돈은 건드리지 않겠다는 말이다. "그게 다가 아니었던 녀석"이라는 소개가 이 한 줄에 이미 들어 있다.
배역 이야기지만, 이 배우에게는 다른 무게로 읽힌다.
전호준은 글을 쓰는 배우이기도 하다. 브런치에 '호작가'라는 이름으로 73편을 발표했고, 그중 한 편의 제목이 「나는 실패한 배우다」였다. 그 글에 이런 문장이 있다.
"사실 실패라고 말하기엔 아직입니다. 왜냐하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기 때문이죠." - 전호준의 브런치에서
스스로를 실패한 배우라고 부른 사람이, 그게 다가 아니었던 인물을 연기한다.
■ 몸으로 말하는 배우
전호준은 2007년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로 데뷔했다. 중앙대 무용학과를 나왔고 비보이로 춤을 췄다. 대사보다 몸이 먼저 말하는 훈련을 오래 받은 배우다.
한탕을 노리며 들떴다가 이내 무너지는 인물은 그 훈련이 그대로 쓰이는 자리다. 앉은 자세 하나, 손끝의 떨림 하나로 인물의 상태가 드러나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겹친다. 도박은 시간을 건너뛰려는 행위다. 한 방이란 곧 과정의 생략이다. 그런데 이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는 건너뛰지 않은 사람이다. 이름 없이 15년을 채웠다.
한 방을 노리는 인물을, 한 방 없이 살아온 사람이 연기한다.
■ 보이는 어두움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다
무대에서 박문호는 한 방을 노린다. 철없어 보이고, 답답해 보인다.
그런데 극이 흘러가면서 관객은 알게 된다. 그가 왜 그렇게까지 매달렸는지를.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를 알고 나면 앞서 본 장면들이 전부 다르게 보인다.
이 작품이 건네는 것이 그 지점에 있다.
눈에 보이는 어두움이 그 사람의 어두움 전부는 아니라는 것. 한 사람을 알려면 겉이 아니라 안을 들여다봐야 진실이 보인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 그 진실을 알아봐 줄 때, 사람은 비로소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온다는 것.
연출 손남목이 이 작품에 담고 싶었던 마음도 그와 멀지 않아 보인다.
"눈에 띄지 않아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빛나는 존재." — 손남목 연출
■ 열쇠장이와 도박꾼

이 작품의 중심에는 늙은 사람과 젊은 사람이 마주 선 자리가 있다.
김만수는 평생 남의 잠긴 문을 열어온 열쇠장이다. 박문호는 한 방으로 인생을 건너뛰려는 도박꾼이다. 한 사람은 기다려서 여는 법을 알고, 한 사람은 기다릴 줄 모른다.
김만수가 남기는 말은 이렇다.
"돈이라는 게 삶의 목표가 되어선 안 된다고." — 극중 김만수
훈계가 아니라 먼저 가본 사람의 보고에 가깝다. 그리고 젊은 사람은 그런 말을 바로 알아듣지 않는다. 알아들어지기까지 필요한 것은 설득이 아니라 함께 산 시간이다. 이 작품이 100분을 쓰는 이유가 거기 있다.
김만수를 맡은 정은표는 연출 손남목과 20년 전 대학로 시절부터 인연이 있었다. 손 연출은 "삼고초려의 마음으로" 함께하기를 청했다고 밝히며 이렇게 덧붙였다.
"김만수 역을 맡은 세 배우의 연기를 보며 전율을 느꼈다." — 손남목 연출
젊은 배우가 마음껏 흔들릴 수 있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3인극에서 그 자리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없으면 극이 무너진다.
그리고 극이 흘러 열쇠장이는 이런 말을 남긴다.
"나만의 열쇠를 찾고 있었는데, 드디어 찾았다." -극중 김만수
그는 도박꾼의 잠긴 문을 열쇠로 따지 않았다. 왜 그 문을 잠갔는지를 알아봐 주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도박꾼이 결국 열쇠장이의 열쇠가 된다.
한쪽이 다른 쪽을 구해내는 이야기가 아니다. 서로가 서로의 열쇠가 되는 이야기다.
밤무대 가수 조미령은 이하린이 연기했다. 무대 위 나머지 세계는 멀티맨 전성재가 혼자 만들었다. 관객이 가장 늦게 알아채지만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자리다.
■ 마음이 연결될 때, 별이 된다
별 하나는 그저 빛나는 점이다. 여럿을 이어야 별자리가 된다.
이 작품이 말하는 별도 그렇다. 혼자서는 별이 되지 않는다. 마음이 서로 연결될 때 비로소 별이 된다.
"가장 낮은 곳, 가장 빛나는 별들이 산다". "함께 살아낸 사람들… 그게 별이야"
청년들이 어렵다는 말이 흔해진 시대다. 무대 위 세 사람과 상황은 다르겠지만, 한 방을 노려서라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낯설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은 그 마음에 훈계하지 않는다. 대신 누구나 마음속에 별 하나를 품고 있다고 말한다. 다만 그 별은 혼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찾아주는 것은 결국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다.
■ 이 작품은 "3인3색 완벽한 캐스팅이 선사하는 최상의 앙상블"이다.
10월 18일까지다. 무대에 오르는 배우는 회차마다 바뀐다. 어떤 날은 정은표가, 어떤 날은 김명수나 김학도가 김만수로 선다. 박문호도, 조미령도 마찬가지다. 같은 대본이지만 매일 다른 조합이 만들어진다. 보고 싶은 배우가 있다면 예매 전에 캐스팅을 확인하는 편이 좋다.
전호준이 박문호로 서는 날, 객석은 한 남자가 화투패를 쥐었다 놓는 것을 본다. 그리고 극이 끝날 즈음에는 그가 왜 그 패를 쥐었는지를 알게 된다.
이 배우가 다음에 어떤 이름으로 불릴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지금 그는 박문호다. 15년 만에 얻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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