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도 못 들던 사람이 건강을 가르친다 — 임해숙의 인생 2막숟가락도 못 들던 사람이 건강을 가르친다 — 임해숙의 인생 2막

임해숙 씨의 명함에는 '건강·다이어트 심리 전문가'라고 적혀 있다. 7권의 책을 냈고 전국을 다니며 강의를 한다. 7년째 어르신 건강 밥상 봉사를 하고 있다.
그 명함을 갖기까지 그는 두 번 몸이 멈췄다. 한 번은 하반신 마비였고, 또 한 번은 뇌출혈이었다.
자기 눈물을 닦을 수 없던 사람
2021년 4월 18일, 전남 여수에서 돌아오는 길에 메스꺼움과 어지러움을 느꼈다. 피곤해서 그러려니 했다. 다음 날 아침 현관을 나서는 순간 세상이 돌았고, 다시 침대에 누웠을 때 왼쪽 팔과 다리가 굳어 있었다.
아들이 부른 119 구급대원은 뇌졸중이 의심된다며 1분 1초가 중요하다고 했다. 골든타임 안에 병원에 도착해 큰 수술 없이 치료가 시작됐다.
진짜 고통은 그다음이었다. 다음 날 아침,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코로나 시기라 가족은 병실에 올 수 없었다. 밤마다 눈물이 흘렀는데, 그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그 눈물을 자기 손으로 닦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어제까지 무대에서 사람들 앞에 서 있던 제가, 오늘은 눈물 하나도 닦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화장실도 혼자 갈 수 없었다. 세수도, 식사도, 말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재활병원에서 배운 것
마음을 다시 잡은 것은 재활병원에서였다. 말 한마디를 하려고 하루 종일 연습하는 사람, 손가락 하나를 움직이려 온 힘을 다하는 사람, 다시 걷기 위해 수없이 넘어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하루가 사실은 감사와 기적이었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걷는 것, 밥을 먹는 것,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 그 모든 것이 기적이었습니다."
그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부터 시작했다. 앉는 연습, 일어서는 연습, 한 발 내딛는 연습. 어제보다 1cm 나아지면 그것을 기적으로 여겼다.
3개월 안에 두 발로 병원 문을 나가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퇴원하던 날 담당 의사는 그의 회복을 두고 "천운"이라고 했다.
'뜨다'라는 이름
두 번째 멈춤 이전, 첫 번째 멈춤이 있었다. 하반신 마비였다.
아들과 오랜 재활 생활을 함께하며 자존감이 바닥까지 내려앉았다. 하고 싶은 일도, 자신 있는 일도 없었다. 아침에 눈을 떠도 일어날 이유를 찾지 못하는 날들이었다.
그 무렵 만난 멘토가 그에게 브랜드 이름을 지어줬다. '뜨다'였다.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과 함께 뜨는 세상을 만들어 가자. 그 이름에 담긴 뜻이 저를 다시 일으켰습니다. 이름 하나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강단에도 섰다. 마이크를 잡고 사람들 앞에 서 있는 동안만큼은 아프지 않았다고 그는 말한다.
2014년 3월 중국 광저우 박람회에서 처음 제품을 선보였다. 하반신 마비로 숟가락도 들지 못하던 사람이 낯선 나라의 박람회장에 자기 이름을 걸고 서 있었다.
이후 베트남 사업은 큰 손해로 끝났다. 그는 그 시기를 "또 한 번의 어두운 터널"이라고 부른다. 무너진 자리에서 그가 붙들고 있던 것은 강의였다.
소방서, 법무부, 인천의 섬들까지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갔다. 태풍으로 배가 뜨지 않아 경찰 배를 얻어 타고 다음 섬으로 건너간 날도 있었고, 연평도에서는 포격 사이렌에 땅굴로 몸을 숨긴 적도 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자리에서도 사람은 웃으며 살아가는구나. 그렇다면 나도 못 해낼 일이 무엇일까."

건강을 잃어본 사람이 건강을 가르치기까지
그가 건강 분야로 방향을 잡은 데는 이유가 있다. 하반신 마비를 겪으며 자기 몸을 살리려고 공부했던 것이 출발이었다.
건강 관련 영업을 시작한 것은 2016년이다. 첫 석 달은 스스로 "강매였다"고 말한다. 아는 사람을 찾아다니며 부탁했고, 명단이 바닥나자 갈 곳이 없었다.
그만두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미 자기 이름을 걸고 시작을 알린 뒤였다.
"자동차왕도, 보험왕도 세 끼 밥을 먹고 잠을 자며 하루를 산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까지 제대로 한 가지라도 끝까지 해낸 게 무엇인가."
그때부터 그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고 한다. "아직 10년 안 해봤잖아." 4년 뒤 그는 그 분야에서 최고 실적을 냈다. 이후에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 경험에서 그가 얻은 결론은 판매 기술이 아니었다.
"무조건적인 사랑과 관심과 배려, 그리고 기다림과 반복 훈련. 아기가 '엄마'를 백 번 반복하다 마침내 부르는 것처럼요."
살림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는 힘이 사람을 이끄는 힘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오늘의 아침
지금 그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눈을 뜨면 아침이 허락된 것에 감사 기도를 한다. 따뜻한 물을 한 컵 마시고, 누운 채로 30~40분 스트레칭을 한다. 명상 20분, 아파트 뒤 풀밭을 맨발로 20분 걷는다. 아침 식탁에는 색색의 채소를 담은 샐러드가 오른다.
이 샐러드의 이름은 그가 지은 것이 아니다. 컬러 푸드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방송 작가가 색깔을 보고 '신호등 샐러드'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는 회사의 건강 밥상 바꾸기를 7년째, 어르신 건강 밥상 봉사를 부산·제주·군포·안면도·공주·조치원·광주에서 이어오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 일흔 후반의 한 어르신은 처음에 식사를 하러 왔다가, 아직 팔다리가 성하니 밥 차리는 봉사를 하게 해달라고 청했다. 3년째 한 번도 빠지지 않는다.
"작은 실천이지만 봉사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미소 짓는 그 어르신을 보며 저는 더 겸손해야겠다고 배웁니다."
다 나은 것은 아니다
그는 자기 몸 상태를 감추지 않는다.
"지팡이 없이는 설 수조차 없던 제가 이제는 아침마다 뜁니다. 그렇다고 다 나은 것은 아닙니다. 왼쪽 얼굴은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고 발음도 온전하지 않습니다. 꼬리뼈는 밤마다 저를 뒤척이게 합니다."
주변에서는 그를 '불사조 여사'라 부른다.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고도 다시 살아났다는 뜻이다. 그는 그 별명을 이렇게 받는다.
"불사조라 해서 통증 하나 없이 다시 난 것이 아닙니다. 저는 통증과 불편함을 안고, 포기하지 않고 다시 날아오른 사람입니다."
그가 가르치는 것이 완치가 아니라 회복인 이유다.
"건강은 숫자가 아니라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생명력입니다."
건강을 잃어본 사람만 아는 것이 있다고 그는 말한다. 혼자 걷는 일, 혼자 밥을 먹는 일, 단추 하나를 스스로 채우는 일, 아침에 눈을 떠 오늘이 허락되는 일. 그 모든 것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힘든 시간을 지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아직 10년을 다 해보지 않았다면 포기하기엔 이릅니다. 캄캄한 터널을 끝까지 걸어가면 반드시 밝은 빛이 보입니다. 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제 몸으로 그것을 했습니다."
출처 <사진 = 임해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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